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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선의 시네마플러스 '위로공단' - 여성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임흥순 감독의 헌사
  • 기사등록 2015-08-30 21:59:59
  • 수정 2015-08-30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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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임흥순이 연출한 <위로공단>은 가수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에 나오는 '야근'으로 시작한다. 영상은 구로공단에 위치한 한 공장의 풍경을 보여준다. 표정을 잃은 사람들이 말 한마디 없이 오직 작업에만 몰두하고, 대신 기계소음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흑백영상 때문인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1936)가 바로 연상된다.

그리고 영화는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차례로 들려준다. 무려 22명의 노동자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여성 노동자들이다. 누군가의 누나, 언니, 이모, 고모, 엄마였을 이들은 각각 자신이 살았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회상하고, 심경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오래된 영상과 흑백사진들이 당시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는지를 부연설명 해준다.

이들의 이야기는 1960년대 초에서 시작하여 1978년 노동조합의 대의원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여공들에게 똥물을 끼얹은 동일방직 오물투척 사건, 1979년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던 여성 노동자 중 한 명이 강제 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YH무역 사건, 2005년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로 촉발된 기륭전자 사태, 2007년 까르푸-홈에버 사태,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2015년 삼성 백혈병 사태까지 이어진다. 

시간적으로 약 50년을 거슬러 올라오는 동안, 공간적으로는 구로, 가리봉 등 대표적인 공단지역을 시작으로 ‘대형마트’, ‘콜센터’, ‘항공기’에 이르는 구체적인 그녀들의 작업현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 2014년 캄보디아 약진통상 노동자들의 시위 현장까지 도달한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캄보디아 군대를 불러 강제 진압한 사건이다.

이 50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것은 여성 근로자들의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다. 휴일도 없이 야근이 계속되던 각박한 삶은 임신과 출산 시기 조차도 편히 쉴 수 없는 오늘날에도 변함 없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뀐 업종에서는, ‘감정노동’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다산콜센터의 상담원이 수시로 벌어지는 욕설과 성희롱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실로 충격적이다.




안정된 직장을 원했던 그들의 희망은 알바생, 인턴, 비정규직, 기간제, 무기계약직이라고 명칭만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소득 불균형도 여전하다. 2014년 기준 5인 이상 사업장의 상용 정규직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354만인데 비해, 임시직 근로자 임금은 137만원에 불과하다. 전국에서 월 평균 30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 비율은 25%에도 미치지 못한다.  

1960년 69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14년 2만7천달러를 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비약적으로 증가한 국민소득은 모두 어디로 누구에게로 갔을까?  왜 노동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결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할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에 대한 거부”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속성과 더 가지려는 자들의 비인간적인 탐욕까지 꿰뚫으면서도 영화는 의외로 차분하게 진행된다. 심지어 인터뷰 사이에 짧은 여백을 두면서 생각할 시간까지도 마련해 준다. 하지만 주제의식은 점점 더 강화되고 형상화된다. 바로 행위 예술에 가까운 퍼포먼스의 반복적인 삽입에 의한 이미지 효과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하얀 복면을 쓴 여성들이 자연과 일터 등 다양한 공간을 누비며 행위를 펼친다. 특히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을 연상케하는 천으로 얼굴이 가려진 이미지와 눈가리개를 한 채 옥상에 서 있는 소녀의 이미지는 인상적이다. 김동진 대중문화평론가는 ‘맹목’과 ‘죽음’을 언급하였는데, 강제로 눈을 가리고 끌려간 여성노동자들부터 시작하여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작업복 등과 오버랩된다.

<위로공단>은 “자본 이동과 노동 변화에 따른 현실 불안을 예술적 언어로 써내려간 새로운 역사기록”, “아시아 여성들의 노동조건과 관련된 불안정성의 본질을 섬세하게 살펴보는 영상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서울독립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몬트리올국제영화제, 상하이국제영화제 등에서도 초청 상영 또는 수상하였다. 

<컬처앤뉴스 & 박호선의 시네마플러스> 



박호선 기자 (cinema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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