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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선의 시네마플러스 '침묵의 시선' - “무엇 때문에 묻어 둔 아픈 기억을 들춰내는가?”
  • 기사등록 2015-09-17 0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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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쿠데타로 인도네시아 정부를 장악한 군부는 백만 명이 넘는 대규모 학살을 저질렀다. ‘반공’을 명분으로 100만명이 넘는 공산주의자, 지식인, 중국인들을 비밀리에 살해했다. 그러나 사실은 공포정치 아래에서 공공연한 것이었고, 미국 등 서방국가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지원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국민영웅이라 불리며 화려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에 충격받은 다큐멘터리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가 대학살의 리더를 만났다. “당신이 저지른 학살을 다시 재현해보지 않겠습니까?” 대학살의 주범들은 감독과 배우가 되어 의기양양하게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지 영화 촬영이었지만 그들에게 조금씩 심적 변화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피해자로 역할이 바뀌었을 때 마침내 흐느끼며 되묻는다. “내가 정말 이런 죄를 지은 건가요?”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대학살의 주범들과의 인터뷰와 끔찍한 살인의 재현을 화려한 비주얼과 음악, 그리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들과 함께 녹여낸다. 그렇게 완성된 <액트 오브 킬링>은 영화 역사상 유례없는 수상을 기록했다. 제6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부문 관객상과 에큐메니컬심사위원장상을 수상하고, 제86회 아카데미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전 세계 70개 이상의 영화제에 초청되고, 70개 이상의 영화상을 휩쓸었다. 

<침묵의 시선>은 <액트 오브 킬링>의 후속작이라 말할 수 있다. 이번에는 제3자가 아닌 피해자의 가족이 학살자 또는 그 가족들을 직접 찾아간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대학살로 형 ‘람리’를 잃은 동생 ‘아디’가 그 주인공이다. 아디는 사건이 발생하고 50년이 지나서야 형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가 그때의 이야기를 묻고, 가해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소름 끼치는 살인을 증언한다. 

그들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말했다. "공산주의자는 신앙심이 없어. 우리 이슬람교는 살인을 인정하지 않지만, 적은 죽일 수밖에 없지", "람리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겠지만, 우리가 어쩌겠어? 그땐 혁명의 시대였다고", "백만 명이 죽었지. 그렇게 큰 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치란 게 그래요.",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그냥 지키기만 했지.",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 

그나마 양심을 되찾아 약간의 죄책감을 가진 학살자는 "지난 일은 잊어요. 그 때를 교훈 삼아 잘 지내면 되죠"라며 인터뷰에 심한 거부감을 보인다. 자신의 아버지가 공산당을 물리친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가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학살자의 딸만이 아버지의 만행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아디'에게 대신 사과를 하면서도, 동시에 가족이란 이름으로 아버지에 대한 선처를 부탁한다. 




<액트 오브 킬링>은 공포와 거짓 위에 세워진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를 드러냈고, <침묵의 시선>은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그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디와 그 가족들은 친아들을 죽인 학살자들과 한 동네에서 살며 침묵과 공포 속에서 지내야 했다. 늘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심지어 아버지는 끔찍했던 트라우마에 갇혀 자신을 늘 17살이라고 인식한다.

대학살이 자행되고 50년이 흐른 후 ‘반공’을 명분으로 자행된 대학살의 허상과 감추어진 진실이 드러났다. 그곳에 공산주의자는 거의 없었고, 사람을 죽여서라도 권력을 쟁취하려는 추악한 권력욕과 기회주의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학살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고, 가해자들은 대학살을 정당화시키며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처벌을 받지 않음으로써, 100만명이 넘는 억울한 ‘죽음’이 분명히 있지만, ‘책임’은 전혀 없는 이상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침묵의 시선> 기자간담회에서 내한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1965년에 일어난 일은 결국은 제국주의가 독재정권이라고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있었던 학살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저도 지금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세월호에 대한 일이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식으로 우리는 침묵에 익숙해져 있고,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라고 걱정했다.

해외 유력 매체와 평단은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렬한 다큐멘터리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실로 깊은 통찰! (Errol Morris)”,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 진정한 예술작품! (Huffington Post)”, “절대 잊혀선 안 될 21세기 가장 중요한 다큐멘터리 (Twitch)” 등 찬사를 보냈다. 2014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비롯한 5관왕, 201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평화영화상,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시네필상 수상 등 지금까지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37개의 영화상을 휩쓸고 있는 명작이다. 

<컬처앤뉴스 & 박호선의 시네마플러스>



박호선 기자 (cinema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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