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은 움직이고 있다. 오랜 기간 남산자락에서 쉬고 있는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이다. ‘국립’은 그래야 맞다. ‘칸’으로 가는 <회오리>가 궁금하기도 하고 음악가 장영규가 춤을 만든다고 해서 10월 9일 국립극장을 찾았다.
재공연 작품인 <회오리>(국립극장 해오름극장)는 지난해 초연 후 ‘한국적 현대무용의 성공작’이라는 평과 ‘그렇지 않다’는 평이 공존한 작품이고, <완월>은 무용을 모르는 음악가가 연출을 한다고 해서 그 궁금증은 배가되었다. 작품이 좋던 나쁘던 화제를 생산했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다. 관객을 극장으로 올 수 있게 하는 마케팅은 도시를 활기차게 한다. 궁금증은 창조적 삶의 바로미터다.
작품을 보기 전부터 음악가 장영규는 궁금증의 대명사였다.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있는 ‘비빙’의 장영규는 실망을 주지 않았다. 한국춤에 비해 한국전통음악의 현대화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안무가의 입장에서 본 <회오리>와 <완월>은 동서양을 접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한국무용계의 현주소를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손의 에너지와 한국적 감성이 더해진다면--- <회오리>
<회오리>는 동양적 정서를 가진 핀란드 안무가(테로 사리넨)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정서적 일치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장영규의 라이브 음악은 전통을 현대화했다는 느낌에 덧입혀 토속적 정서의 현대화라는 내밀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자연주의적 색채를 추구하는 안무자 테로의 요구와 부합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테로의 안무는 서구의 눈으로 한국을 본 안무자의 시각이란 느낌이 완연했다. 테로는 성실하고 치밀하게 한국적 움직임을 연구했고 일정부분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인만이 알 수 있는 더 깊은 기와 묵묵함과 같은 동양적 우수가 가지고 있는 감성을 흉내 내기는 어려웠다.
<회오리>는 2가지 점에서 한국적 정서를 비껴갔다. 먼저, 몸 에너지의 활용이다. 다리를 벌려 중심을 아래로 내려 기(氣)가 위로 솟는 것을 막으면서 동작의 확장을 유도하는데 까지는 아주 좋았다. 그러나 손가락을 활짝 펼치고 춤의 확장을 위해 온 몸에 힘이 들어간 동작에서 한국춤이 가진 에너지의 활용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춤에서 손은 중요한 표현 도구다. 장구를 칠 때 손으로 장구를 치는 것만큼이나 소리가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주고 조절해주는 손가락의 열림과 닫힘, 그리고 손의 힘과 무게감, 가야금 줄을 온 몸으로 누르면서 음 조절을 하는 손의 악력 등 손바닥과 손끝은 에너지를 조절하는 조리개 역할을 하기에 몸의 끝인 손은 춤에서 중요하다. 손가락 끝을 살짝 모았다 폈다 하면서 힘 조절을 하는 손은 기를 담거나 흐르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몸 안의 에너지와 몸 밖의 에너지를 합치시키거나 연장하거나 닫을 때도 중요하다. 손이 부드러우면서 손끝이 야무져야 춤집이 좋다고 한다.
한국의 무용수들이 좋은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 무용수들에게는 감성적이고 에너지의 흐름을 잘 감지하는 남다른 재능이 있다. 이는 전통춤에서 깊이를 획득하고 현대춤에서 기교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국립무용단의 무용수들은 최고의 움직임을 자랑한다. 무용수들이 안무가 테로의 독특한 움직임 스타일을 배운 것은 실보다 덕이 더 많을 것이다.
이지적인 강강술래의 해체, 유연한 몸의 흐름이 동반된다면--- <완월>
초연 무대인 <완월>(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은 한국적 정서로 서양의 옷을 입힌 작품이었다. 달이 차고 기우는 순환의 의미는 동양사상의 근간이며 근원적 인식의 원형이다. 강강술래는 달밤에 이루어지는 여인의 몸짓이며 원시적 움직임을 기호화한 추상적 의미체이다. 삶의 모습을 몸짓기호로 의미화한 이 춤의 원형은 단순하면서도 치밀하며 움직임 곳곳에 상징과 은유가 풍성하다. 반복과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강술래의 구성은 좌우로 엮고 엮이고 풀고 풀리는 매듭처럼 다양한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
국립무용단의 레퍼토리 중에 <강강술래>가 있다. 그 <강강술래>는 국립무용단 초대 단장인 송범의 창작품이다. 송범은 강강술래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했다. 그 작품에는 여인, 달, 흐름, 분위기 등에 주안점이 가 있다. 송범의 <강강술래>가 원시적 원형을 낭만적으로 현대화하여 무대언어로 풀어냈다고 한다면 이번 국립무용단의 <완월>은 원형의 의미에 집중하고 분석적으로 재해석하여 지적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낸 컨템포러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완월>이 비록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고 개념작업을 충실히 했다 하더라도 춤 공연은 춤이 재미있어야 한다. <완월>에서 가장 미흡한 부분은 움직임이다. 움직임이 화려하거나 많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허리를 사용하지 않는 딱딱한 몸의 흐름은 차고 기우는 달의 의미와도 부합되지 않고 원형이 가진 강강술래의 낭창거리는 움직임과도 유리된다.
한국춤은 삼박의 흐름이기에 재즈와 비슷한 몸적 흐름이 있다. 그런 흐름이 사라진 <완월>에서의 움직임은 마치 로봇이 움직이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는 이 작품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처음의 재미있는 구성과 다양한 움직임 패턴들이 점점 발전하고 확대되어 몸의 유형적 묘미로 옮겨졌다면 뒷부분의 지루함을 만회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춤 공연은 개념과 계산으로만 할 수 없는 감성과 기교의 복합체이다. 비록, <완월>이 지적 즐거움은 선사했지만 춤을 즐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회오리>와 <완월>은 한국적 현대무용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전통을 현대화한다는 것은 끝없는 실험을 전제로 한다. 국립무용단은 더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한다. 작품에 변화가 많다는 것은 무한변신을 위한 지각변동이라고 생각한다. 산통 뒤에 탄생할 국립무용단의 내일이 기대된다.
사진제공_국립극장
손인영 기자 (iy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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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예술감독, 예술교육학 전공(in colomb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