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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커피 한 잔에 담긴 삶, 뮤지컬 '노서아 가비' - 가비를 즐기던 왕 ‘고종’을 독살하려는 음모와 이를 둘러싼 유쾌한 사기극
  • 기사등록 2016-10-07 18:08:17
  • 수정 2017-10-31 14:5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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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두에 열을 가하는 로스팅 과정을 거치면 원두가 된다. 고르게 분쇄한 원두와 적절한 압력, 뜨거운 온도의 물이 만나면 비로소 한 잔의 커피가 완성된다. 은은하고 달콤하다는 말론 부족할 정도로 풍부한 향을 품고 있는 크림빛 거품(크레마)을 거두고 나서야 맛볼 수 있는 검은색의 커피는 씁쓸하면서도 묵직한 맛과 향을 담고 있다.

뮤지컬 '노서아 가비' 공연 사진 (사진제공 벨라뮤즈)

뮤지컬 ‘노서아 가비’는 2009년 발간된 작가 김탁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창작 뮤지컬이다. 러시아 커피를 뜻하는 ‘노서아 가비’는 2012년에는 영화 ‘가비’로 옮겨지기도 했다. 

작품은 커피가 처음 전해진 개화기를 배경으로 노서아 가비를 즐기던 왕 ‘고종’을 독살하려는 음모와 이를 둘러싼 사기극을 그린다. 뮤지컬에선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이자 사기꾼인 ‘따냐’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회가 혼란스럽던 대한제국 시기, 역관인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죽은 후 러시아로 떠난 따냐는 그곳에서 사기를 치며 살아간다. 사기를 치던 중 만난 조직의 보스 이반과 연을 맺은 그녀는 한판 사기극을 꿈꾸는 그를 따라 조선으로 돌아온다. 조선에 돌아온 따냐는 가비를 즐겨 마시던 고종의 바리스타가 되고, 러시안 공사관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협잡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뮤지컬 '노서아 가비' 공연 사진 (사진제공 벨라뮤즈)

작품은 개화기의 혼란한 시기와 따냐의 삶을 커피로 잘 엮어낸다. 화려한 외향에 수려한 언변을 황금빛 거품으로 두르고 한탕을 노리는 사기꾼도, 앞에서는 도움을 주겠다 하지만 속으로는 자기들의 잇속만 차리는 러시아나 일본도, 그 소용돌이 찻잔 속에 갇힌 조선의 상황마저도 커피를 닮았다. 비록 지금의 것은 마시기 전 식어 향이 날아가 버렸거나 과다 추출되어 쓴맛이 진할지도 모르지만, 다음의 인생 잔 속 한 잔은 이보다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마저도 삶과 닮아있어 생각할수록 강한 여운을 남긴다.
  
멜로디데이 여은은 사랑에 기대하고 상처받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단단한 여인 따냐를 그려낸다. 따냐의 마지막 대사 "노서아에 도착하면 가비 한 잔 마시면서 생각해봐야겠어요"는 그녀가 최고의 커피 한 잔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이 얼마나 더 향긋하고 아름다울지를 기대하게 한다. 이 작품으로 뮤지컬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딛는 여은에게도 잘 어울린다.
 
여은 외에 작품을 든든하게 지지하는 숙련된 배우들과 가비를 삶에 빗댄 가사나 음악 역시 단맛, 쓴맛, 신맛 등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신 느낌이다. 여름엔 더위를 물리칠 시원한 아이스커피처럼, 겨울엔 추위를 녹일 따뜻한 커피처럼 관객들에게 향기로운 작품 '노서아 가비'로 닿아 계속해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공연장의 음향이 썩 좋지는 않으므로 감안해야 할 것. 11월 11일까지 서초 흰물결아트센터 화이트홀에서 공연.



유인아 기자 (culture24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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